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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서원에서 위패를 모시는 분입니다. -본명은 '탁'이며 자(子)는 천장(天章) 또는 탁부(卓夫)이며, 호는 단암(丹巖) 또는 백운당(白雲堂) 며 세칭 '역동 (易東)'이라 부르며, 시호는 문희공(文僖公) 입니다. -선생은 강대 정직한 지조로 군을 다스림에 요망한 사당을 철거했고 조정에서는 도끼를 짊어지고 바른 말씀을 간하였다고 합니다. -고려말의 대학자이며, 총명하고 슬기로운 재질과 불의에 굴하지 않는 강한 의지와 지조를 겸비한 성품으로 고려원종 3년에 탄생하시어 정밀학 신비한 이교를 드러내어 밝혀 우리나라에 도학의 문을 열었다.
-학문적으로는 한국 성리학의 역사를 열어나간 선구자였고, 특히 역학의 대가로서 추앙받습니다. -관료로서 과감히 미신을 타파하고, 군왕의 패륜행위를 바로잡기 위하여 지부상소를 감행함으로써 후대 관료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안동전통문화 속에서 역동은 도학, 예의, 절조를 상징하는 향토의 선현이었습니다. -그로해서 퇴계와 그 문도들에 의해 존중받았고 조선조 안동선비문화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 한국 시가문학사적 관점에서 안동지역은 사대부가 치사하여 도학적이념과 자연합일을 우리말 시가로써 노래한 강호가도를 창도한 곳입니다. 농암 이현보, 퇴계 이황 선생을 중심으로 한 향토시가의 유풍은 역동의 시조를 기원으로 하여 성립된것이고, 따라서 역동은 이 지역 최초 의 시조작가로서 소중한업적을 이룬것입니다.
-아래의 <한시>는 역동 선생께서 의정부 사인벼슬을 쉬고 사인암에 물러나 계실 때 사인암의 풍경 을 흞은 노래입니다.
-아래의 <시조>는 사인암 내부 암벽에 새겨진 글자입니다.
▽ 사인암 석벽에 새겨진 역동 우탁선생의 친필
-이 시조는 오늘날 전해져 내려오는 고시조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입니다. 비교적 쉬운 어휘로 이루어져있고 늙음에 대한 한탄을 가장 적절히 표현하고 있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습니다.
▽ 사인암 강변에는 당시 우탁 선생께서 두시던 장기판과 바둑판이 지금까지 암상에 새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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