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서원

 

역동(易東) 우탁(禹倬)선생 (1262-1342)

 

  -역동서원에서 위패를 모시는 분입니다.

   -본명은 '탁'이며 자(子)는 천장(天章) 또는 탁부(卓夫)이며, 호는 단암(丹巖) 또는 백운당(白雲堂)

     며 세칭 '역동   (易東)'이라 부르며, 시호는 문희공(文僖公) 입니다.

   -선생은 강대 정직한 지조로 군을 다스림에 요망한 사당을 철거했고 조정에서는 도끼를 짊어지고

     바른 말씀을 간하였다고 합니다.

   -고려말의 대학자이며, 총명하고 슬기로운 재질과 불의에 굴하지 않는 강한 의지와 지조를 겸비한

     성품으로  고려원종 3년에 탄생하시어 정밀학 신비한 이교를 드러내어 밝혀 우리나라에 도학의

     문을 열었다.

 

생애 - 간추림 (1242-1343)

 

1262

단산현 품달리 신원(현제 충북 단양군 적성면 현곡리)에서 천규(天珪)의 아들로 태어 나셨습니다.

1278

17세인 1278년(충렬왕4년) 향공진사가 되었으며 곧 발탁되어 홍문관 수찬에 임명 되었습니다.

1290

문과에 급제하여 영해 사록으로 나가 미신 타파에 힘쓰셨습니다.

1290~

이후 성균관 좨주, 진주목사, 사인, 감찰규정, 진현과직제학 등을 역입하셨습니다.

~

역동 우탁선생은 정주의 의리학을 정연하여 통달한 학문적 바탕을 가지고 천도와인륜을 밝히고 사회적 폐풍을 개혁하고자 여러 차례 상소를 올렸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벼슬에 뜻을 버리고 복주의 예안현 (안동시 와룡면 선양동, 안동댐 건설로 수몰)으로 퇴거 하였습니다.

1342

그 뒤 충숙왕이 역동의 충의를 높이사 여러번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고 오로지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전념하다가 1342년(충혜왕 3년)에 생을 마치셨습니다.

※ 조선조에 들어와 역동의 학문과 덕행을 흠모하였던 퇴계 선생이 구택 근처에 '역동서원'을 창건 하였습니다. 그 뒤 역동으 본향인 단양에 단암서원, 최초의 사관지였던 영해의 단산서원, 그리고 안동에 구계서원 등이 창설되어 향사 하였습니다.

 

 

역동의 위상

 

   -학문적으로는 한국 성리학의 역사를 열어나간 선구자였고, 특히 역학의 대가로서 추앙받습니다.

   -관료로서 과감히 미신을 타파하고, 군왕의 패륜행위를 바로잡기 위하여 지부상소를 감행함으로써

    후대 관료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안동전통문화 속에서 역동은 도학, 예의, 절조를 상징하는 향토의 선현이었습니다.

   -그로해서 퇴계와 그 문도들에 의해 존중받았고 조선조 안동선비문화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 한국 시가문학사적 관점에서 안동지역은 사대부가 치사하여 도학적이념과 자연합일을

        우리말 시가로써 노래한 강호가도를 창도한 곳입니다. 농암 이현보, 퇴계 이황 선생을 중심으로

        한 향토시가의 유풍은 역동의 시조를 기원으로 하여 성립된것이고, 따라서 역동은 이 지역 최초

        의 시조작가로서 소중한업적을 이룬것입니다.

 

 

우탁 선생의 작품..

 

   -아래의 <한시>는 역동 선생께서 의정부 사인벼슬을 쉬고 사인암에 물러나 계실 때 사인암의 풍경

    을 흞은 노래입니다.

  단풍잎에 서리 내려 땅에 붉게 덜어지고

 

  석담 위에 바람 부니 푸른 하늘 흔들리네

 

  숲 사이 외로운 마을 멀리 보일락말락 하는데

 

  구름 밖에 산봉우리만 연이어 들승날승하네

 

 

   -아래의 <시조>는 사인암 내부 암벽에 새겨진 글자입니다.

 탁아 너는 간사한 부류
 (당시 관리들을 의미)가 아니다.

 

 뜻을 펴지 못하였으나 확고할 것이며

 

 홀로 일어남에 두려움이 없을 것이며

 

 세상에서 은둔함에도 번민함이 없을 것이다.

 

      ▽ 사인암 석벽에 새겨진 역동 우탁선생의 친필

          

 

   -이 시조는 오늘날 전해져 내려오는 고시조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입니다.

     비교적 쉬운 어휘로 이루어져있고 늙음에 대한 한탄을 가장 적절히 표현하고 있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습니다.

봄 동산에 눈녹인 바람 불더니 어느새 사라지고 없구나.

 

 그 봄바람을 잠깐 빌려다가 이 하얀 머리 위에 불게 하고 싶다.

 

 그리하여 벌써 몇 해가 된 귀밑에 서리 같이 희여진 머리칼을

 

 눈녹이듯 녹여 검게 하고 싶구나.

 

 

     ▽ 사인암 강변에는 당시 우탁 선생께서 두시던 장기판과 바둑판이 지금까지 암상에 새겨져

         있습니다.